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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고르기

내 글의 인상이 지저분하지 않았으면.

by mareesol 2022. 3. 30.

자기 표현을 할 때 다들 가장 잘 하는 분야가 있을 것이다.

춤, 연기, 연설, 마임, 그림, 글, 노래...

 

나는 글과 그림에 집착하는데, 어릴때부터 늘 아쉬움이 있었다.

잘하는 남들과 비교했을 때

- 수렴보다는 발산

- 골자보다는 디테일

- 디자인적이기보다는 장식적

이라고 생각했다. 인정받는 것은 전자들이라고 생각했다.

 

내 글은 수식에 집착하다 흐름을 잃기 일쑤였다.

내 그림도 당장 꽂힌 테크닉에 재미 붙이다가 흥미를 잃고 맺지 못하는 게 다반사였다.

그래서 스탯이 고르지 않다.

누워 있는 걸 좋아하는지라 엉덩이에 힘주는 운동만 했더니 다른 데는 다 퇴화하고 엉덩이 근육이 남아있는 것처럼.

 

시간이 많이 흘렀다.

책도 그림도 멀리한 지 오래 된 현재, 스코어를 점검해본다.

 

1. 글

짬바 덕인지 이삿짐 싸듯이 떠오른 상들을 욕심스레 눌러담아 표현할 수 있지만, 성인이 된 내 문체는 인터넷 문체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독서왕이던 유년시절 이후론 인터넷 텍스트로만 트레이닝 한 것이라 레퍼런스가 부족하다. 플롯을 짜는 능력도 아쉽다. 나 뿐 아니라 디지털 세대가 겪는 읽기/쓰기의 어려움이 있겠지.

노력은 했다. 너무 디테일해졌다 싶으면 다시 큰 골자를 강조해서 덧붙였다. 덧붙이다 보면 글은 지저분해졌다.

그래도 별 수 없었다. 일필휘지의 경지와는 하늘땅 차이로 먼 범인으로선, 계속 덧그려서라도 최종적으로 결과에 닿으려고 노력한거다.

- 주변인 평: #매우 친절한 글, #꼼꼼하다, #어려운 말을 많이 쓴다, #비유가 많다

간명해지려면 한참 연습해야 한다.

 

2. 그림

최근에 그림을 다시 시작했는데, 그림은 글보다 더 고통이다. 정말 그리고 싶을 때가 아니면 몇년동안 그림을 그릴 일이 안 생긴다.

정말 그리고 싶은 게 생겨서 펜을 잡았는데, 생각 외로 결과물을 낼 수 있었다.

덧그리는 매체로 해야 했다. 저지르고 교정하는 것을 반복하며 원하는 느낌을 낼 때까지 시간을 들였다.

글처럼 그림도 그렇게 그렸더니 어찌 결과에 닿기는 했다. 손으론 연습을 끊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보는 눈이 나아졌지 싶다.

 

3. 결론

연습을 끊었다고 생각한 시간동안 늘었다.

외부 자극들을 소화시키며 추구하는 바가 좀 더 명료해진 까닭으로(한마디로 오래 살아서) 어떻게든 결승점으로 끌고 가는 능력은 있다.

시간이 나의 거름망이였다.

수식으로 진창인 문장이라도 많이 갖고 있는 것에서 빼는 것은 더 나은 과정 아닐까.

장식적인 성향을 미워하지 않기로 했다.

나는 Input에 큰 영향을 받고, 그것을 소화해 내는게 조금 느릴 뿐이니까.

 

얼마 전에 오은영 선생님 멘트 중에 봤는데, 젊을 때 너무 비장해지지 말고, 그냥 하는 게 중요한 거라고.

어린 나는 외부 문물이 주는 자극에 너무 민감해서, 그것을 빠르게 풀어놓고 다시 성장하는 방법을 몰랐다.

마침 추구하는 것들도 너무 장대해서 미숙한 학생이 소화하기엔 어려웠다. 나는 쉽게 비장해졌고 피곤해서 아예 시도하지 않게 되었다.

여전히 내 글의 인상이 멋졌으면 하는 욕심을 놓지 못했지만, 이제라도 풀어놓아 보려고 한다.

쓰지 않으면, 내가 창작하고 싶어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은 성립하지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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